
메모리 호황의 이면, 가격을 올린 감산이 중국을 키우는 역설
최근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AI 열풍을 타고 강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HBM과 D램 가격이 상승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의 실적에 대한 기대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이주완 박사의 메모리 시장 분석을 보면서 조금 다른 관점에서 시장을 바라보게 됐습니다.
이주완 박사는 하이닉스에서 8년을 근무한 뒤 하나금융그룹에서 12년간 심사역과 애널리스트로 활동한 엔지니어 출신 분석가입니다. 특히 기업 관계자의 말보다는 생산·출하 등 실제 데이터의 흐름을 중요하게 보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가 지적하는 부분 중 제가 가장 흥미롭게 본 것은 현재 메모리 가격 상승의 배경에 공급 조절이 상당 부분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메모리 업체들의 감산이 만든 가격 상승
AI 수요가 증가한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수요가 늘었다고 해서 메모리 업체들이 생산량을 무조건 늘린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업체들은 과거의 공급 과잉과 가격 폭락을 경험한 이후 생산량과 가동률을 조절해왔습니다.
공급을 줄이면 가격은 올라갑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생산량을 크게 늘리지 않고도 더 높은 가격에 판매할 수 있기 때문에 수익성이 크게 개선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여기서 묘한 역설이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가격을 지키기 위한 감산이 오히려 중국에 기회를 주는 것은 아닐까?
높은 메모리 가격은 기존 업체들에게는 좋은 소식입니다.
하지만 후발주자에게는 전혀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저 시장에 들어가면 돈을 벌 수 있다.”
중국 CXMT 입장에서는 바로 이런 환경이 생산능력을 확대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됩니다.
기존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이 수익성을 지키기 위해 생산을 조절하는 동안 중국 업체가 생산능력을 늘리면서 시장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결국
감산 → 가격 상승 → 높은 수익성 → 중국 증설 → 경쟁 심화
라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부분이 이번 이주완 박사의 분석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3사 체제에서 4사 체제로
지금까지 글로벌 D램 시장은 사실상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의 3사가 지배하는 구조였습니다.
하지만 CXMT가 범용 D램과 LPDDR 시장에서 점유율을 계속 확대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3사 체제가 4사 체제로 바뀌는 것입니다.
물론 CXMT가 당장 HBM에서 한국 업체들을 따라잡는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하지만 범용 D램과 모바일 메모리에서 생산능력을 계속 확대하고 기술 격차까지 줄여간다면, 장기적으로는 메모리 시장의 경쟁 강도가 다시 높아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과거 메모리 산업에서 반복됐던 가격 경쟁과 치킨게임이 다시 등장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HBM만 바라봐서도 안 되는 이유
AI 시대의 핵심 메모리가 HBM이라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다만 AI가 데이터센터를 넘어 PC, 스마트폰, 자동차, 엣지 디바이스 등으로 확산될수록 전력 효율과 가격이 중요한 메모리 시장도 함께 성장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LPDDR 같은 저전력 메모리도 장기적으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따라서 앞으로의 메모리 시장은 단순히
“AI 증가 → HBM 증가 → 메모리 가격 상승”
이라는 하나의 공식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HBM의 성장 + 범용 D램·LPDDR 수요 + 중국의 생산능력 확대
를 함께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지금의 이익'이 아닙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이 지금 많은 돈을 벌고 있다는 것은 분명 긍정적인 신호입니다.
하지만 장기 투자자라면 한 단계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높은 이익이 5년 뒤에도 유지될 수 있을까?”
AI 수요가 계속 증가하더라도 공급자가 늘어나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특히 높은 메모리 가격이 중국 CXMT의 증설을 가속화한다면, 지금의 높은 수익성이 오히려 미래의 경쟁자를 키우는 결과가 될 수도 있습니다.
저는 그래서 이번 분석을 보면서 메모리 투자의 핵심을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 됐습니다.
AI가 얼마나 많은 메모리를 필요로 하는가도 중요하지만, 그 메모리를 누가 공급하게 될 것인가가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지금의 메모리 호황이 새로운 슈퍼사이클의 시작인지, 아니면 높은 가격이 새로운 경쟁자를 만들어내는 과정인지는 앞으로 CXMT의 생산능력과 시장 점유율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보면 어느 정도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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