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별별이야기

요즘 델(Dell)의 주가를 보면 사람들은 AI 서버 기업을 먼저 떠올립니다.

by AI Survival Log 2026. 9. 20.
반응형

처음에는 컴퓨터 부품을 조립해 팔던 회사였다

요즘 델(Dell)의 주가를 보면 사람들은 AI 서버 기업을 먼저 떠올립니다.

그런데 델의 시작을 보면 꽤 의외입니다.

1984년, 당시 대학생이었던 마이클 델은 단돈 1,000달러로 PC's Limited라는 회사를 만들었습니다.

거창한 AI 기술도 없었습니다.

혁신적인 반도체도 없었습니다.

 

그저 당시 컴퓨터 시장에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부분 하나에 집중했습니다.

“왜 컴퓨터를 꼭 비싼 완제품으로 사야 하지?”

당시 PC 시장은 제조사가 만든 완제품을 유통망을 거쳐 판매하는 구조가 강했습니다.

마이클 델은 여기서 다른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고객이 원하는 사양을 받고 필요한 부품을 조합해 컴퓨터를 만들어 직접 판매했습니다.

재고를 잔뜩 쌓아놓고 팔기보다 주문을 받고 조립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당연해 보이지만 당시에는 상당히 다른 접근이었습니다.

그렇게 델은 싸게 만들고, 필요한 만큼 만들고, 고객이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만들어주는 회사가 됐습니다.

그런데 델의 진짜 재미있는 역사는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델은 거대한 시장보다 '틈'을 계속 찾아갔다

마이클 델이 직접 회고한 일화가 하나 있습니다.

어느 날 한 기업 고객이 델에게 하드디스크 업그레이드 키트 150개를 주문했습니다.

당시 작은 회사였던 델에게는 엄청난 주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고객이 공장을 둘러보다가 한쪽에 놓여 있던 컴퓨터를 발견했습니다.

그 컴퓨터는 델이 하드디스크를 포맷하기 위해 직접 만든 것이었습니다.

고객이 물었습니다.

“저 컴퓨터도 파나요?”

델은 원래 팔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고객의 질문을 계기로 사업의 방향이 바뀌었습니다.

 

불과 몇 달 만에 델의 사업은 본격적인 주문형 PC 제조로 전환됐습니다.

델 스스로도 이 일을 고객의 말을 듣고 사업 방향을 바꾼 대표적인 사례로 설명합니다.

이게 델이라는 기업을 이해하는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델은 처음부터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했던 회사라기보다,

고객이 무엇을 불편해하는지 찾아내고 그 틈을 사업으로 만드는 회사에 가까웠습니다.

그리고 PC에서 서버로 내려갔다

PC 시장에서 성공했다고 해서 계속 PC만 붙잡고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1990년대 들어 델은 서버 시장으로 들어갔습니다.

 

1994년에는 PowerEdge 서버를 출시했고, 2001년에는 미국 인텔 기반 서버 출하량에서 1위를 차지했습니다.

여기서부터 중요한 변화가 시작됩니다.

컴퓨터 한 대를 파는 회사에서

기업의 컴퓨팅 인프라 전체를 공급하는 회사로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서버가 들어가고,

스토리지가 붙고,

네트워크가 필요해지고,

데이터센터 관리가 필요해지고,

보안과 소프트웨어가 필요해집니다.

델은 이 영역을 하나씩 넓혀갔습니다.

 

2009년에는 Perot Systems를 인수하면서 하드웨어를 넘어 서비스 영역으로 확장했고, 이후 스토리지·시스템 관리·클라우드·네트워킹·보안·소프트웨어 기업들을 계속 인수했습니다.

그리고 2016년에는 결정적인 승부수를 던집니다.

EMC를 인수한 것입니다.

이 거래를 통해 델은 서버뿐 아니라 스토리지와 기업용 IT 인프라 영역까지 크게 확장했고, VMware까지 포함한 거대한 기업용 인프라 생태계를 확보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의 델은 단순히

“PC를 만드는 회사가 AI 서버도 만든다”

라고 보면 안 됩니다.

 

오히려

PC → 서버 → 스토리지 → 네트워크 → 기업 IT → 데이터센터 → AI 인프라

라는 긴 진화의 결과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AI 시대가 찾아왔다

여기서 재미있는 일이 벌어집니다.

AI 시대가 열리자 기업들에게 새로운 문제가 생겼습니다.

AI 모델을 만들려면 GPU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GPU만 사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서버가 필요하고,

고속 네트워크가 필요하고,

스토리지가 필요하고,

엄청난 전력이 필요하고,

열을 식힐 냉각 시스템이 필요하고,

데이터를 관리할 소프트웨어와 서비스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기업 입장에서는 이것들을 각각 다른 업체에서 사다가 직접 연결하는 것이 상당히 복잡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수십 년 동안 기업용 IT 인프라를 다뤄온 델의 경험이 다시 등장합니다.

델은 NVIDIA와 함께 Dell AI Factory라는 형태로 GPU 서버뿐 아니라 데이터·스토리지·네트워크·서비스를 포함하는 엔드투엔드 AI 인프라를 기업에 제공하고 있습니다.

2026년 3월 기준 델은 4,000개 이상의 기업이 Dell AI Factory를 도입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AI가 소수의 빅테크 기업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일반 기업으로 확산될수록 이런 '통합해서 가져다주는 능력'의 가치가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델의 숫자가 재미있다

2026년 2분기 델의 AI 최적화 서버 매출은 164억 달러였습니다.

1년 전보다 100% 증가했습니다.

AI 서버 주문은 무려 609억 달러였고,

분기 말 백로그는 950억 달러까지 올라왔습니다.

전통적인 서버와 네트워크 매출도 105억 달러로 122% 증가했습니다.

델은 이런 수요를 반영해 FY2027 매출 전망을 기존 전망보다 250억 달러 높인 1,920억 달러로 올렸습니다.

여기서 더 흥미로운 것은 AI 서버만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AI가 들어오면 기존 데이터센터 인프라까지 같이 교체해야 합니다.

 

서버가 늘어나고,

스토리지가 늘어나고,

네트워크가 빨라져야 하고,

데이터를 저장하고 이동시키는 시스템도 바뀌어야 합니다.

AI가 하나의 제품이 아니라 거대한 인프라 교체 사이클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델의 진짜 경쟁력은 GPU가 아닐지도 모른다

여기서 델을 볼 때 한 가지를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델이 AI 시대의 핵심 칩을 만드는 회사는 아닙니다.

 

GPU는 NVIDIA가 만듭니다.

HBM은 한국과 미국 등의 메모리 기업들이 공급합니다.

그렇다면 델이 하는 일은 무엇일까요?

이 수많은 부품을 실제로 기업이 사용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GPU를 서버에 넣고,

메모리를 구성하고,

네트워크를 연결하고,

스토리지를 붙이고,

냉각과 전력 시스템을 고려하고,

기업의 데이터센터 환경에 맞게 구성하고,

필요하면 구축과 관리까지 지원합니다.

말 그대로

 

'부품'을 'AI 시스템'으로 바꾸는 회사에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능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40년 동안 PC부터 서버, 스토리지, 네트워크, 기업용 IT를 다루면서 축적한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델의 이야기는 '운'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물론 델에게 운이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PC 혁명이 있었고,

인터넷이 있었고,

데이터센터가 성장했고,

클라우드가 등장했고,

마침내 AI 붐이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시장이 바뀔 때마다 델이 그 시장의 다음 틈새를 찾아갔다는 것입니다.

PC를 팔다가 서버로 갔고,

서버에서 스토리지로 갔고,

스토리지에서 네트워크와 기업 IT로 확장했고,

결국 지금은 AI 데이터센터 전체를 공급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델을 보면 한 가지 생각이 듭니다.

기업의 성장은 반드시 처음부터 거대한 미래를 예측해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때로는

“고객이 지금 무엇 때문에 불편하지?”

라는 질문 하나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작은 문제를 하나씩 해결하다 보면

어느 순간 처음에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거대한 시장의 한가운데 서게 됩니다.

1984년 1,000달러로 시작한 작은 PC 회사가

40여 년 뒤 AI 데이터센터 인프라의 핵심 공급업체 중 하나가 된 것처럼 말입니다.

 

어쩌면 델의 가장 큰 자산은 PC도, 서버도, AI도 아닐 수 있습니다.

시장이 바뀔 때마다 남들이 지나치는 틈새를 찾아내고, 그 틈새를 자신의 다음 성장축으로 만들어온 능력.

AI 시대에 델이 다시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반응형

댓글